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4)
"이 글은 당당뉴스(DangDang News)에 공식 기고된 목사님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 매체사: 당당뉴스 (The DangDang News)
- 발행일: 2010-11-30
- 필자: 김기천 목사 (Rev. Kee Cheon Kim)
📜 목사님 원고 전문 (Manuscript)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4)
업데이트 2010.11.30 19:53
익투스트래블190423
3.3. 기원전 6세기 힌두 개혁종교: 자이나교, 불교
야즈나발캬와 같은 『우파니샤드』 현자들만 기원전 7-6세기의 출가자들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스승들이 있었다. 『우파니샤드』의 저자나 스승들은 출가한 승려들이 하는 금욕적 수행을 ‘내적 희생제사’로 여기면서 그들에게 『베다』경전을 계속 암송할 것을 권했다. 이들은 금욕적 수행을 『베다』경전과 연결시킨 것이다. 같은 시기에 숲속에서 살던 어떤 스승들은 희생제사에 관한 『베다』의 가르침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가르침과 수행법을 발전시켰다. “아지타”(Ajita)란 스승은 윤리적인 가르침이나 죽음 이후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물론을 주장했다.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가 이끄는 “아지비카”(Ajivika) 학파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의 허상이며 이생의 삶이 전부라는 운명론을 고수했다.
위와 같이 극단적인 가르침도 있었지만 대부분 스승들의 가르침은 야즈나발캬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윤회 사상(Samsara), 현재 도덕적 행동이 다음 출생을 결정한다는 인연(Karman, 業), 윤회에서 해탈(Moksa)의 가능성 등을 받아들였다. 이런 기본적인 것은 일치했더라도 세부적인 사항들은 계속 논쟁이 되었다.
기원전 6세기에 인도 정통 종교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던 두 개혁종교, 불교와 자이나교가 탄생했다. 두 종교 모두 무사계급(Ksatriya)에 속했던 두 사람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버리면서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은 “마하비라”(Mahavira, ‘위대한 영웅’)로 불리는 “바르다마나”(Vardhamana, 기원전 599-527)와 “붓다”(Buddha, ‘깨달은 자’)로 불리는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 기원전 566-486)였다. 둘 모두 해탈하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엄격한 수도 생활의 길을 주창했다. 둘 다 베다적인 형식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베다 승려들에게 자이나 교도나 불교도들은 “베다 밖에 있는 자들”로 간주되었다.
3.3.1. 자이나교
“자이나”(Jaina)란 이름은 ‘정복하다’란 동사 “지”(ji)에서 유래한 명사로 자이나교의 종교적 특징을 내포한다. 자이나 승려들(Jains)의 목표는 모든 속박에서 자유하게 해주는 영혼의 순수성을 얻는 것이다. 이것 얻으려면 감각이나 인연(Karma, 業)을 정복하는 금욕적 전쟁을 싸워야 한다. 과격한 종교적 수련에서 성공한 사람을 “정복자” 곧 “지나”(Jina)라고 부른다. 이 지나를 따르는 자들을 “자이나”(Jaina)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자이나교의 최초 지도자는 “바르다마나 마하비라”(Vardhamana Mahavira)였다. 마하비らは 왕자였지만 나이 30에 가족과 가정과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옷을 벗고 머리를 뿌리 채 뽑아버렸다. 이런 극단적인 포기와 함께 그는 12년을 혹독한 금욕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42살에 해탈(Moksa)하게 되어 “지나”(Jina) 또는 “티르탄카라”(Tirthankara)가 되었다. 이렇게 해탈한 마하비라를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고, 그중에 브라만교의 『베다』경전 학자였던 “인드라부티 고타마”(Indrabhuti Gautama)가 개종하고 그의 첫 제자가 된다. 사실 마하비라의 중요한 열한 제자 모두 브라만에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자이나교를 최초로 후원한 왕은 “마우랸”(Mauryan) 황제 찬드라굽타(Candragupta, 기원전 321-297) 1세였다.
자이나 공동체는 평신도와 출가자 두 그룹으로 나눈다. 평신도 추종자들을 위해서 마하비라나 후기 자이나교 지도자들은 자기 절제나 맹세를 강조했다. 자이나교 평신도는 고기, 포도주, 꿀, 야식 등을 피해야 한다. 또한 사기, 도둑질, 폭력 등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금식도 해야 하고, 가난한 자들 뿐 아니라 비구승이나 비구니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자이나교는 티르탄카라 즉 지나나 다른 존귀한 인물들을 향한 수행법을 개발했다. 이런 방식 가운데 가장 알려진 예배의식이 “데바푸자”(Devapuja)이다. 자이나 승려들은 깊은 명상 자세를 하고 있는 지나(Jina) 형상들을 데바푸자 방법으로 숭배한다. 지나 형상 앞에 다가가서 절하고, 지나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 주위를 돌고, 지나를 목욕시키고, 그에게 예물을 드리고, 등을 흔든다. 그러면서 해탈한 지나의 초월적인 상태를 명상한다. 이들은 지나들이 그 형상들 안에 실제로 현존한다고 믿지도 않고 자신들이 드리는 예물이 지나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데바푸자는 다만 예배자들에게 지나들이 도달한 이상적인 상태를 기억나게 하고 또한 각자 그런 상태를 추구하도록 자극을 주는 명상 훈련일 뿐이다.
자이나교에서 평신도가 받는 윤리적이며 예식적인 엄격한 훈련들은 출가 승려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간주된다. 자이나 승려들은 영혼의 순수함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과정을 공동으로 돕기 위해서 종교를 조직한 것이다. 평신도가 세상적인 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게 되면 자이나교 공동체 안에서 큰 사건이 된다. 사회생활을 버리고 새로운 수도생활에 들어가는 예식에서 수도승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내고 자신의 이름도 포기한다. 이 시점에서 이 새로운 수도승은 지도자의 감독 하에 모든 폭력, 거짓, 도둑질, 성교, 개인 재산 등을 포기하는 다섯 가지 맹세를 한다. 엄격한 수도 생활을 통해서 이 수도승은 점차로 인연(Karma, 業)을 제거하고 최후의 승리를 목표로 영혼의 힘 안에 거한다. 자이나교에서 가장 극단적인 단계는 스스로 굶는 “살레카나”(Sallekhana)이다. 이 절정 단계에서 승려는 점차 영혼의 최상의 순결을 위해서 자기 몸을 포기한다.
3.3.2. 불교
불교도들은 사물의 본성을 완전히 깨달은 부처(Buddha)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미래에 부처가 될 “싯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는 무사계급(ksatriya) 출신으로 기원전 566년경에 히말라야 산맥 아래서 태어났다. 싯다르타는 첫 29년을 호화로운 가정에 편안하게 보냈다. 이후 해탈하기 위해서 금욕주의자로 방랑 생활을 하며 사회를 등졌다. 6년 동안 엄격한 생활, 학습, 명상을 한 후에 싯다르타는 기원전 531년 밤에 “보드 가야”(Bodh Gaya) 지역에 있는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날 밤 그는 열반(涅槃, Nirvana)에 이르고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된다. 깨닫고 나서 부처는 “바라나시”(Varanasi) 밖에 있던 다섯 승려에게 중도(中道), 사제(四諦, Aryasatya), 팔정도(八正道)에 관한 아래와 같은 법륜(法輪)을 굴렸다.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것들이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감각적인 쾌락에 빠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학대하는 고통에 빠지는 것이다. 이 두 극단을 피하는 중도(中道)의 길은 사람을 평안하게 해주며 깨달음 즉 해탈에 이르게 한다. 중도라는 것은 “8 단계의 바른 길”(八正道)을 말하는 데 그것들은 바로 보고(正見), 바로 분석하고(正思), 바로 말하고(正言), 바로 행동하고(正業), 바로 생활하고(正命), 바로 노력하고(正精進), 정신을 바로 차리고(正思惟), 바로 집중하는 것(正念)이다.
인간에게 고통(苦痛, Dukkha)이라는 것이 있다. 첫째, 태어나는 것(生)이 고통이고, 나이 들어가는 것(老)이 고통이고, 죽는 것(死)이 고통이다. 둘째, 근심, 애통, 아픔, 슬픔, 절망 등이 고통이다. 셋째,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는 것이 고통이다. 넷째,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이 고통이다. 다섯째, 원치 않는 것을 갖게 되는 것이 고통이다.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섞여서 뭉쳐진 것들이 고통이다.
고통의 원인은 아집(我集)이다. 쾌락을 얻으려는 욕망, 무엇이 되려는 갈망, 무엇이 되지 않으려는 갈망, 모든 것이 집착이며 고통의 원인이다(Samudaya Satya). 인간이 고통을 없애려면(滅), 모든 집착을 포기하고 끊어버려야 한다(Nirodha Satya). 모든 집착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가 열반(Nirvana)의 경지인 것이다. 집착을 끊어버리는 수행 방법이 바로 “8단계의 바른 길”(八正道)이다(Marga Satya).
깨달음을 얻은 부처가 불교의 기본이 되는 사제(苦集滅道) 팔정도(正見, 正思, 正言, 正業, 正命, 正精進, 正思惟, 正念)에 대한 가르침(Satya)을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60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또한 포교를 위해 사방으로 보내졌다. 시작부터 불교는 개종시키는 종교였다. 몇 세기도 안 되어서 불교의 포교활동은 인도 북부의 아리안 사회만 아니고 남아시아 전반에 거쳐 성공적이었다. 주후 2세기부터 7세기까지 불교는 아시아 전반에 거처 중요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불교는 초기에 인도에서 강력한 종교 운동이었으며 인도 내에 다른 종교들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부처와 그 추종자들은 자이나교가 했던 것처럼 『베다』종교에 대해서 통찰력 있는 비판을 가했다. 부처는 브라만들에 의해 주창된 공적 희생제사를 지나치게 낭비적이고, 폭력적이고, 결과가 불확실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브라만들이 주장하는 권위도 깎아 내렸다. 브라만들은 『리그베다』 10장 90절을 인용하면서 자기들은 푸루샤(Purusa)의 입에서 나온 특별한 계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처는 이런 주장을 비꼬면서, 누구든지 브라만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처는 심지어 힌두종교의 기반이 되는『베다』경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 했다.
불교에 초기 추종자들조차 “붓다 사캬무니”(Buddha Sakyamuni) 즉 석가모니 부처를 초자연적인 인물로 간주했다. 불교도들은 그의 모든 것들이 신통하다고 여겨 그의 재나 유물을 보관해서 “스투파”(Stupa, 佛塔)라고 불리는 무덤에 두었다. 불교 사원 내에 위치한 스투파 즉 탑(塔)들은 불교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불교 신자들은 탑 주위를 돌거나, 화환을 증정하거나, 향이나 등을 키고, 노래를 부르거나, 축복문을 암송하곤 했다. 최소한 기원후 1세기부터 불교도들은 부처의 신체 형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다른 중요한 불교 형상들도 예배의 대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투파나 부처 형상을 향한 이와 같은 신앙적인 행동들은 후기에 “푸자”(Puja) 예식으로 공식화 되었다.
기원전 3세기경에 “마우랸”(Mauryan) 왕 “아쇼카”(Asoka, 기원전 273-232)의 개종으로 불교는 남아시아의 제국 종교가 되었다. 아쇼카는 불교를 적극 지원하였고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포교사들을 해외로 파송시켰다. 아쇼카 왕은 그의 제국 전체에 기둥이나 바위 표면에 “자신은 ‘달마’(Dharma, 부처의 법)[힌두종교 문학에는 ‘달마(dharma)의 정의 또는 설명’을 뜻하는 "달마사스트라"(Dharmasastra)가 있다. "달마"란 본래 ‘지지하는 것, 유지시키는 것’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베다』 경전에서 달마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희생제사를 의미하였다. 불교 경전에서 달마는 부처의 가르침을 의미했다. 자이나교에서는 달마는 자이나 자료가 달마였다. 아쇼카왕은 자신의 종교 정치적 정책을 표현하는 데에 달마란 용어를 썼다.]를 추구한다”는 자신의 새로운 정책을 새겨 넣어 공포하였다. 달마를 추구한다는 것은 곧 관용, 조화, 자비, 비폭력 등에 기초를 둔 공동 윤리법을 뜻한다. 모든 종교인들을 향한 관용을 선포하는 반면, 그는 또한 비폭력을 강조하였다. 그럼으로 『베다』경전에서 가르치는 동물을 살생해서 드리는 희생제사를 실제적으로 배제하였다. 또한 달마의 비폭력 예식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불교승려들에게 예물을 보시하라고 가르쳤다.
아쇼카 왕이 죽은 후에 마우랸(Mauryan) 제국은 나누어졌지만, 아쇼카는 불교적 왕권의 모델을 보여준 셈이다. 주후 2세기까지 불교가 인도 내에서 크게 성장을 해오다가 이후 점차로 세력을 잃어갔다. 인도 내에 불교가 기울여진 분명한 증거는 주후 7세기 “카냐쿠브자”(Kanyakubja)의 황제 “하르솨바르다나”(Harsavardhana) 때에 기록된 자료에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손오공의 『서유기』에도 나오는 중국의 삼장법사(Xuanzang, 玄奘三藏)가 남아시아를 방문했었다. 그는 “하르솨”(Harsa)가 그의 도시에서 베풀었던 장엄한 불교 행사를 관람했다. 그러나 지방을 여행하면서 많은 불교 사원들이 지방 전반에 걸쳐 버려져 있는 것도 보았다. 하르솨가 죽은 후에 인도 내에 불교는 점점 쇠퇴해지고 오히려 인도 동부, 히말라야 지역, 스리랑카 등지에서만 불교가 계속 번창하였다.
(발췌: 큐복음 상권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299-306페이지)
🏛️ 최고 신학자의 심층 분석 및 현대적 해석
김기천 목사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4)" 심층 해설 및 분석
1. 핵심 요약
김기천 목사님의 글은 기원전 6세기 인도에서 발생한 자이나교와 불교, 두 개의 주요 개혁 종교의 기원과 특징을 개괄적으로 설명합니다. 자이나교는 '정복자'라는 의미를 지닌 지나(Jina)의 가르침을 따르며, 철저한 금욕주의를 통해 영혼의 순수성을 추구합니다. 불교는 싯다르타 고타마, 즉 부처의 깨달음을 중심으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며, 초기부터 포교 활동을 통해 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2. 신학적 인사이트
김기천 목사님의 글에서 드러나는 신학적 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종교 개혁의 맥락: 목사님은 자이나교와 불교를 '개혁 종교'로 규정하며, 당시 인도 사회의 종교적, 철학적 배경 속에서 이들의 등장과 발전을 설명합니다. 이는 기성 종교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새로운 가치 추구가 종교 개혁의 핵심 동력임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종교 개혁의 역사를 단순한 교리 변화가 아닌, 사회·문화적 변동과 긴밀하게 연결된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 금욕주의와 해탈: 두 종교 모두 금욕주의적 수행을 해탈의 중요한 수단으로 강조합니다. 자이나교는 감각과 인연을 '정복'하는 금욕적 전쟁을 통해, 불교는 집착을 버리는 수행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금욕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고통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하며, 기독교의 자기 부인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 비판적 시각: 목사님은 불교가 베다 종교의 희생제사, 브라만 계급의 권위, 심지어 베다 경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는 종교가 기존 권력 구조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불교가 아쇼카 왕의 후원을 통해 제국 종교로 성장하고, 사회 윤리 및 정치에 영향을 미친 과정은 종교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는 종교가 개인의 신앙 영역을 넘어 사회 구조와 문화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종교의 쇠퇴와 부흥: 인도 내에서 불교가 쇠퇴하고 다른 지역에서 번성한 사실은 종교의 흥망성쇠가 정치, 문화, 사회적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종교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 더욱 깊이 있는 분석
1. 기원전 6세기 인도의 시대적 배경
기원전 6세기는 인도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습니다. 기존의 베다 중심의 브라만교는 형식주의와 계급 제도에 갇혀 사회적 불만을 야기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파니샤드 철학자들이 등장하여 내면적 성찰과 자기 희생을 강조하며 새로운 사상을 제시했습니다. 목사님은 야즈나발캬를 언급하며 우파니샤드 철학이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을 보여줍니다. 또한, 물질주의와 운명론을 주장하는 스승들의 존재는 당시 사상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이나교와 불교는 기존 종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духовные потребности를 충족시키려는 시도였습니다.
2. 자이나교의 핵심 교리와 실천
자이나교에서 '지나'(Jina)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감각과 욕망을 극복한 '정복자'를 의미합니다. 자이나교의 핵심은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이나교도들은 철저한 비폭력(아힘사)과 금욕주의를 실천합니다.
- 아힘사: 자이나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힘사, 즉 비폭력입니다. 이는 단순한 살생 금지를 넘어 모든 형태의 폭력을 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이나교도들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존중하며, 심지어 미생물까지 해치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주의를 기울입니다.
- 금욕주의: 자이나교는 해탈을 위해 철저한 금욕주의적 수행을 강조합니다. 승려들은 옷을 벗고 머리카락을 뽑는 고행을 감내하며, 음식을 제한하고 세상과의 모든 연결을 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금욕주의는 영혼을 정화하고 인연(카르마)을 소멸시키는 방법으로 여겨집니다.
- 살레카나: 자이나교의 독특한 수행법 중 하나는 살레카나, 즉 단식 자살입니다. 이는 늙거나 병들어 더 이상 духовные 수행을 할 수 없을 때, 스스로 음식을 끊어 생을 마감하는 행위입니다. 살레카나는 고통 없이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으로 여겨지며, 최고의 духовные 경지로 간주됩니다.
3. 불교의 핵심 교리와 실천
불교는 싯다르타 고타마, 즉 부처의 깨달음을 중심으로 합니다. 부처는 인간의 고통의 원인을 탐구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 사성제: 불교의 핵심 교리인 사성제는 고통(苦), 고통의 원인(集), 고통의 소멸(滅), 고통 소멸에 이르는 길(道)로 구성됩니다. 이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통을 직시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하는 практический 가르침입니다.
- 팔정도: 팔정도는 고통 소멸에 이르는 길, 즉 '도'(道)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практический 지침입니다. 팔정도는 바른 이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으로 구성됩니다. 이는 지혜, 도덕, 정신 수양을 아우르는 комплексный 수행 체계입니다.
- 중도: 불교는 감각적 쾌락과 극단적인 고행을 모두 피하는 '중도'를 강조합니다. 이는 균형 잡힌 삶을 통해 духовные 성장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도는 팔정도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구현됩니다.
- 열반: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 즉 해탈입니다. 열반은 모든 욕망과 집착이 사라진 상태로,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평화로운 경지를 의미합니다.
4. 자이나교와 불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자이나교와 불교는 모두 기원전 6세기 인도에서 발생한 개혁 종교로서, 기존의 브라만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공유합니다. 두 종교 모두 윤회 사상과 인연(카르마)의 법칙을 받아들이며, 해탈을 목표로 духовные 수행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두 종교는 수행 방법과 교리에서 차이점을 보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비폭력과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통해 영혼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반면, 불교는 중도를 강조하며 팔정도를 통해 духовные 성장을 이루려고 합니다. 자이나교는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아힘사를 강조하는 반면, 불교는 인간의 고통에 більш 집중합니다.
5. 기독교와의 비교
자이나교와 불교는 기독교와도 몇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입니다.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는 반면, 자이나교는 비폭력을, 불교는 자비를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반면, 자이나교와 불교는 자기 수양을 통해 해탈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6. 결론
김기천 목사님의 글은 자이나교와 불교의 기원과 특징을 간결하게 설명하면서, 종교 개혁의 역사적 맥락, 금욕주의와 해탈,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등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목사님의 글은 독자들에게 자이나교와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종교 간 비교 연구를 통해 신학적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